잘하고 싶어서 애쓰는데 잘하지 못하는 것 중 일등을 꼽으라면 단연코 잘 자는 일이다. 한 문장에 ‘잘’을 세 번이나 쓸 만큼 부단히 노력하는 일인 데다가 ‘순식간에 잠들고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자기’가 인생의 목표 중 하나인 사람이라 잠 좀 못 자면 어때, 하고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노력할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잠에 서툴면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기본적으로 잠에 드는 것도 잠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하기 때문에 새벽에 자주 깬다. 무심코 시간을 확인하고는 낙담하는 게 일상이랄까. 잠에 할당된 양도 적어서 아무리 졸리고 피곤하더라도 낮잠은 금지다. 카페인이 든 것들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여름엔 유독 모든 증상이 더 심해지면서 면역력이 약해지고 한 번씩 잔병치레를 한다. 그래서 매일 시험을 치르는 기분으로 밤을 맞이하고 밤이 가까워지면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커피 마시는 것을 그만두었다. 몇 해 전부터 커피를 마시면 예외 없이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이 바르르 떨렸다. 몸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못할 정도로 산만해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애정을 가지고 길들여 온 습관을, 얼마 없는 애호의 대상을 쉽게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요동치는 몸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어코 마시곤 했다. 대신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이른 아침에 딱 한 잔,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 마시기. 금지된 사랑을 어떻게든 이어가 보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커피를 마신 날은 죽어라 화장실을 가도 카페인은 몸에서 빠질 줄 몰랐고 번번이 해가 뜬 뒤에 얕은 잠에 들었다. 미련하게도 그런 날들을 아주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이별할 수 있었다.
        잠을 못 잔 다음날은 몽롱해서 피곤하고 피곤해서 침울하다. 그런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는 건 유쾌하지 않고 여파가 더 오래갈 때는 애써 유지해 온 생활 패턴이 뒤섞여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다. 슬프지만 며칠씩 밤을 새워도 괜찮았던 회복력은 이제 없고 커피보단 당연히 잠을 택할 만큼 건강에 진심인 삼십 대가 되었다.



막 졸업을 한 스물일곱의 언저리부터였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고 쓸모를 증명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에 생전 하지 않던 손톱을 물어뜯었다. 거의 매일 악몽을 꿨다. 그때 어둠 속에서 너무 오래 헤맨 탓인지 거대한 불안을 통과하면서 이전과는 무언가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고 조금 가벼워진 불안의 무게는 고스란히 불면이 채웠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게 싫다. 느리게 흐르는 밤의 시간에 갇혀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는 일보다 지루한 게 또 있을까. 가만히 누워 까만 어둠을 응시하면 밤은 보란 듯이 맑고 환한 마음을 삼킨다. 구석에 조용히 숨어있던 불안을 깨운다. 그 뒤에 밀려오는 기억들이란 대체로 반갑지 않은 것들뿐이다.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말들, 치기 어린 욕심에 저지른 실수들,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떠나간 얼굴들, 붙잡았어야 하는 손들, 지나가 버린 사랑의 순간들. 빠른 속도로 쏟아지고 이리저리 엉키는 생각들 속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무력해진다. 그 끝에는 영원히 혼자가 된 것 같은 끔찍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싫다.
        잠을 못 자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불면을 미워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지만, 오래 불면을 앓은 사람에게 그건 불가능에 가깝고 그렇게 넓은 마음을 가지지도 못한 나는 그 사실을 매 순간 의식하고 억울해하다가 결국 긴 밤을 미워하며 어둠 속을 유영한다.



어느 밤에는 이건 모두 속도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너는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곁에서 나를 오래 봐 온 친구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 애는 모를 테다. 애초에 생각이 많게 태어난 사람은 생각을 적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걸. 괴로워하던 내게 또 다른 친구는 말했다. “생각이 너무 멀리 가 버리면 여기로 다시 돌아와. 너는 돌아오는 길을 알아.” 그러고는 내 손을 들어 가슴에 얹어주었다. 그 말이 너무 따뜻해서, 손끝에 느껴지는 심장 박동이 너무 선명해서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후드드 떨어지던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재빠르게 소매 끝으로 훔쳤다는 걸, 그 애는 알까. 
        잠의 주변을 서성일 때면 그의 둥근 얼굴과 함께 그 말이 떠오른다. 그때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들고 나가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그러면 겹겹이 쌓여 있던 슬픔이 한 꺼풀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무게를 잃고 표류하던 마음의 조각들이 조금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런 기분. 



얼마 전부터 커피의 자리는 차가 차지했다. 커피와는 향부터 맛과 색, 전부 다르지만 물을 끓여 찻주전자와 컵을 데우고 찻잎의 무게를 재 차를 우리는 과정이 꼭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 무엇보다 찻잎이 우러나면서 띠는 투명한 빛깔이 예뻐서 조용히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덕분에 아침마다 카페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금단현상인지 보상 심리인지, 감자칩을 먹는 횟수와 양이 부쩍 늘었지만.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 볕을 들인다. 아침 바람을 맞으며 뜨겁게 내린 차를 한 모금 마시면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온기가 뒤척였던 지난밤을 위로해 준다. 밤새 미움으로 얼룩졌던 어둠이 마른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음미하며 즐기는 날은 아직 멀어 보이고 긴 밤은 언제나 조금 잔인하지만, 서툴더라도 밤을 보내고 나면 이렇게 매일 아침이 온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그저 아침을 맞이하는 방법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기댈 곳은 밤이 아닌 아침에 있다고, 이걸 즐겁게 기다려보자고, 뜨거운 차를 호호 불고 홀짝거리면서 다짐해 보는 오늘의 아침이다.